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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용산공원, 부유층의 거대한 정원 되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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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미군기지 이미 아름다운 녹지
‘공원화’란 이미 낡은 관념
150년 전 서양 낭만주의의 산물
뉴욕 센트럴파크는 본래 수돗물 땜에 건설
용산공원 미래상 논의 매우 안일해
지난 21일 열린 서울 용산공원부지 내 장교숙소 개방 행사. 사진공동취재
지난 21일 열린 서울 용산공원부지 내 장교숙소 개방 행사. 사진공동취재
20년 전쯤이다. 미군 장교로 일하던 친구를 따라 당시만 해도 비교적 출입이 쉽게 허용되었던 용산 미군기지를 들락거린 적이 있다. 목적지는 네이비클럽과 기지 내 식당이나 주점이다. 한남동 어디쯤에서 1차를 하고 거나한 기분으로 기지 안의 사우스포스트에 들어가면, 술기운 때문인지는 몰라도 미국의 한적한 근교 도시로 순간 이동한 느낌이었다. 미사일이나 철책, 방공포나 지뢰밭 등을 떠올렸던 나의 피상적 짐작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여기도 그저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2만명 이상의 인구 중 군인보다 훨씬 더 많은 수가 엔지니어 등 지원 인력과 가족들이라고 했다. 초·중·고가 다 있는 그야말로 작은 자족 도시다. 그들이 기지를 자신들의 고향과 비슷하게 꾸며놓았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재작년 말부터 용산 미군기지 내 버스투어가 시행됐다.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멈춰 있지만,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과 영상을 살펴보니 20년 전 느꼈던 모습과 비슷하다. “생각보다 자연이 너무 잘 보존되어 있다” “건물의 보존 상태도 좋아 보인다” 등의 탄성 섞인 얘기들이 들린다. 주변의 높은 건물에서 바라봐도, 남산 아래 녹지는 대부분 용산 미군기지에 속한다. 생태적 보고가 되어버린 비무장지대(DMZ)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용산 미군기지는 서울 도심에서 가장 짙은 녹음 지역이 되어버렸다. 키가 큰 아름드리나무도 많다. 건폐율은 10%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으로서 밀도는 낮다. 게다가 저층이다. 하늘과 풍경을 막는 지장물이 거의 없다. 계획대로라면 용산공원은 내후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27년께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1000여동의 건물 대부분을 없애고, 지형을 만들고, 물을 만들고, 나무를 심으려니 꽤 오래 걸릴 것이다. 기지를 공원으로 만들기 위함인데, 용산 미군기지를 실제로 살펴보면 이미 공원이다. 정확한 자료가 없지만 대략 추정해 보니, 건폐율이 14~5%밖에 안 된다. 애써 공원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 이미 용산 미군기지 내의 오픈 스페이스는 양적으로 충분하다. 초·중·고교에 딸린 운동장과 야구장, 축구장, 각종 스포츠 시설과 주차장도 그냥 쓰면 된다. 다만 손을 대지 못하고 오래 방치될 경우, 점점 허물어져서 나중에는 비싼 돈을 들여 철거하거나 다시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많은 숲과 나무는 또 어떤가? 건물 사이 널찍한 공간과 일부 과도한 포장면을 산책로와 휴식공간으로 정비하면 그대로 공원이다. 이촌동에 사는 사람이 자전거길로 서울역까지 출퇴근한다거나, 한남동에서 용산역까지 공원을 가로지르는 조깅 코스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숲과 잔디로 둘러싸인 용산 미군기지. 장철규 선임기자
숲과 잔디로 둘러싸인 용산 미군기지. 장철규 선임기자
공원이란 꽤 낡은 개념이다. 150년 전쯤에 서양의 도시에서 크게 유행했던, 도시를 악으로, 자연은 선으로 규정하는 19세기 낭만주의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사회적 환경이 그랬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는 당시 사람들의 욕구와 필요를 충실히 반영하는 걸작이었다. 설계자인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는 급성장하는 맨해튼섬의 한복판에 그의 고향 코네티컷의 들판을 옮겨왔다. 하느님이 주신 그대로의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복제하려는 시도였다. 왜? 자동차와 아스팔트 도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런던, 뉴욕과 같이 매연과 공해로 찌든 도시를 벗어나 쾌적한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시만 해도 극소수 부유층에 불과했다. 육로로 50마일을 가는 비용이 대서양을 건너는 범선의 티켓보다 비싸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도시에 갇혀버렸고, 옴스테드는 그들의 정신적 피폐함과 자연에 대한 갈구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센트럴파크에 자연에 대한 환상을 심었다. 그가 공원 내에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같은 인공적 시설물을 극히 꺼렸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쭉쭉 뻗은 고속도로는 서울에서 양양 해변, 혹은 태백산맥의 국립공원들을 2시간 권으로 묶는다. 고속철을 타면 목포나 부산까지도 금세다. 무엇보다 석탄에 의존하던 19세기 산업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청정한 수준이다. 옴스테드가 살아있다면, 21세기 아시아의 한 도시에서 센트럴파크, 즉 순수한 자연을 모방하려 애쓰는 모습을 비웃을 것이다.
동작대교 북단에서 바라본 용산 미군기지. 장철규 선임기자
동작대교 북단에서 바라본 용산 미군기지. 장철규 선임기자
“용산은 공원이다”라고 누군가 답을 정해버렸을 때, 우리는 그 언어에 갇혀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거개의 관료를 포함해서, 일반인들의 상식 속에 들어있는 공원이란 기껏해야 센트럴파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잔디밭과 호수와 숲이 일렁거리는 지형 사이로 드러나는 목가적 풍경은 용산공원의 예상 조감도에도 명확히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150년 전의 대형 공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현실과 맞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쓰레기장이었던 센트럴파크의 부지를 구입하는 데 쓴 비용은 지금 돈으로 환산해도 맨해튼에 있는 고급 아파트 한 채 값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이 용산 미군기지를 이전하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어마어마한 비용을 생각해 보라. 지금 용산 땅의 가치를 생각해 보라. 잔디밭과 호수와 나무가 만드는 그늘은 좋다. 그러나 거대한 기회비용을 전제로 한다. 사회적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센트럴파크처럼 연간 4천만명의 방문객 수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관광도시에서도, 이용자의 80% 이상은 주변의 최고급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다. 조금만 멀어져도, 이용자 수는 급락한다. 용산공원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주변에 살 수 있는 사람은 소수 부유층으로 국한된다. 용산공원은 이들을 위한 거대한 정원이 된다. 나쁘다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현상이 그러하다는 말이다. 숭고한 안식처와 같은 공원은 21세기 어바니즘(도시주의)에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서울 용산미군기지. 김태형 기자
서울 용산미군기지. 김태형 기자
다시 센트럴파크로 돌아와 보자. 대규모 도시공원의 시작이자, 조경이라는 분야의 시작이 되었던 이 공원의 애당초 목표는 목가적 유유자적함이 결코 아니었다. 옴스테드와 뉴욕의 지도자들은 그 정도로 안이하게 사고하지 않았다. 생존의 문제였고, 도시의 존망이 걸려있다는 시급한 자각이 센트럴파크의 조성에 깔려있다. 바로 수돗물이다. 대부분의 인류가 우물물이나 빗물, 개울물에 의존하고 있던 1800년대 초반, 뉴욕시는 항만에서 벌어들이는 엄청난 관세 수입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광역 상수도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당시 지구 상의 그 어떤 도시도 감히 시도할 수 없었던 대역사다. 세계적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선 전염병을 막을 수 있는 깨끗한 물은 무엇보다 시급한 인프라였고, 센트럴파크는 수십마일 거리의 시골에서 끌어온 물을 저장하여 시가지로 공급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았다. 지금도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재클린 오나시스 저수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반해 용산공원의 미래상을 그리는 논의들을 듣고 있자면, 그 안일함에 개탄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공짜 땅”을 전제한 논의라는 느낌이 든다. 천문학적 규모의 이전사업비, 환경정화비용, 평택기지 조성과 그에 따른 마찰, 공원 조성비 등 국민의 피땀 어린 혈세가 소요됨을 아는지 모르는지, 센트럴파크에 맞먹는 크기라느니, 파리시 공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면적이라느니, 남산과 한강을 잇는 “생태축”과 “지형 복원” 운운하며 관념적인 레토릭(수사학)만을 늘어놓고 있다. 생태적 도시공원이란 건물과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환경을 이미지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자연의 모습과 생태를 일치시키지만, 새들과 곤충과 풀꽃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생태공원이란 애당초 모순어법이며, 개념적 사기에 가깝다. 자연을 신성화하는 19세기적 고정 관념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이규(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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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30, 2020 at 11:5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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